짙은 땅거미가 내리고 있는 적막한 산을 채우는 것은 오직 두 사람의 숨소리뿐이었다. 그 고요 앞에서 현걸과 근혁의 숨은 점차 긴장을 두르고 가늘게 떨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작은 마을이기에 조용한 줄로만 알았으나, 풀벌레 소리며 새 우는 소리 하나 없는 산은 그 자체가 기이한 현상이었다. 더군다나 서낭신의 흔적은커녕 사람의 혼은 물론이오, 짐승의 혼조차 없...
"현걸이랑 일을 다녀오겠다고?" 산처럼 치솟는 신어머니의 눈썹을 본 현걸은 물론 근혁도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방석 위에 얌전히 무릎을 꿇어 앉았다. 밖은 시끌시끌 했는데, 묵직한 기세가 눌러앉은 방 안은 세상과 단절된 듯 고요했다. 현걸의 나이는 갓 스물이었다. 사회와 무속의 세계 어느 곳에서도 경험이 적을 수밖에 없는 한참 미숙할 나이. 하지만 뛰는 법을...
현걸과 그의 신어머니가 탄 차가 별다른 잡귀나 액운을 달지 않고 멀어지는 것을 보고서야 겨우 안심한 중년의 박수무당이 고개를 돌리니, 넋이 나간 주변 무당들과 바라지들을 물리고 어느새 새로운 굿판을 준비하는 자신의 제자가 있었다. "어떻게 알았냐." 거 준비 좀 도와주면서 물으면 어디 덧나시나? 물론 치미는 불만을 그대로 입 밖에 꺼냈다간 매타작이 돌아올 ...
현걸이, 우리 현걸이. 그렇게 속삭이는 어머니의 따스한 살결과 살내음, 부드러운 음성은 현걸에게 위안이 되어주는 단 하나의 것이었다. 대대로 신을 모시는 집안의 아이가 영가를 볼 때마다 까무러치면 어떡하냐고 나무랄 법도 하건만, 성정 여린 아들이 울음을 터뜨리며 달려오면 그때마다 다정히 품을 내어주시던 어머니였다. 그런 어머니가 갈기갈기 찢기는 꿈을 꾼 날...
중편 : https://posty.pe/9abhjt 근혁은 다시 한번 옛말의 위력을 실감했다. 사실 '설마'는 세계적인 킬러의 이름이 아닐까?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나 사람을 많이 잡을 수는 없는 일이다!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설마 무슨 일이 생기겠냐고 웃어넘긴 근혁은 시간이 흐른 현재, 고개를 푹 숙이고 하염없이 커피잔을 바라보는 중이었다. 어쩌다 이렇게...
상편 : https://posty.pe/3gpysx 하편 : https://posty.pe/9qzhxq "같이 마실까요?" 현걸의 그 한 마디에 근혁은 그대로 함락되고 말았다. 격투기였다면 케이오패에 가까울 정도의 회심타였다. 이걸 어떻게 거절해? 내내 신경 쓰이던 사람이 막 실연해서 같이 술을 마시자고 하는데! 하물며 요일조차 기가 막히게 금요일이다. 모...
중편 : https://posty.pe/9abhjt 근혁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무료한 일상을 즐기는 중이었다. 뭔 일이 나느니 재미가 없어도 조용한 것이 낫다는 것이 근혁이 제 삶에서 내린 정론이었다. 그런 삶의 태도에 충실한 덕분인지 근혁의 일상은 그가 바란 대로 평탄하게 굴러갔다. 그나마 최근 있던 가장 큰 일이래 봐야 옆집에 새로운 이웃이 이사 왔다는...
현걸이 짚어주기 전보다 더 오래전부터, 근혁은 자신의 기질을 알고 있었다. 그 당시에는 정확히 무엇이라고 정의 내린 건 아니었지만 적어도 자신이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눈치채기는 크게 어렵지 않았다. 그게 아마 죽은 비둘기를 보았을 때였던가. 비둘기 시체라는 흥미로운 사건 소재에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드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고, 주변의 아이들을 둘러보던 근혁...
근혁이 그리운 나날이었다. 그의 옷깃에 묻어있는 바람의 잔향과 담배 연기의 조각이 그리웠고, 느긋하게 휘어지는 입꼬리가 보고 싶었다. 아래로 슬쩍 내리깐 눈에서 보이는 평온함과 울렁거리던 목울대를 제 시선 속에 두고 싶었으며, 자신을 염려하며 늘 한 발 짝 멀어진 곳에서 조심스럽게 뻗어주던 그 뜨거운 손이 절실했다. 그가 해준 음식의 맛도, 그가 손질해 준...
어머니에게 만나는 사람이 있냐는 질문을, 왜? 여느 여덟아홉 살 난 아이들이야 숨기는 것 없이 쪼르르 일러바칠 일이지만, 어머니의 농담-이라기엔 제법 진담처럼 들리던-을 들었던 현걸의 머리에는 비상등이 켜졌다. 그러니 단 한 마디 거짓말이면 될 텐데. 현걸은 자신을 걱정하는 어머니와 선생님들에게 자기는 괜찮다는 거짓을 곧잘 말하던 아이였다. 거짓말 자체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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