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가 외도로 집을 나갔다. 술독에 빠져 살던 아버지는 허망하게 뺑소니로 사망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집 나갔던 어머니가 강물에 투신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그때부터 현걸의 삶은 허무뿐이었다. 애써 공허함을 지우기 위해 공부에 몰두했다. 번듯한 대학에 들어가 학기 내내 수석을 휩쓸며 받은 장학금으로 학비 걱정 없이 여유롭게 지냈지만, 성취감은 없었다. 부모...
상에 오르는 반찬이 전부 근혁이 만든 것으로 바뀌고, 현걸이 한 번의 월세도 내지 않은 채 여름이 왔다. 당연하게도 현걸의 구직을 막은 건 근혁이었다. 공부에만 집중해도 힘든 게 사법고시인데 괜한 푼돈 때문에 시간 버리는 일은 관두라는, 집주인이 꺼내기엔 이상한 논리로 말이다. 현걸이 자신은 비용을 지원해 줄 가족이 없어 일을 하지 않으면 월세를 내지 못한...
"오늘도 좋았어, 자기." 퀴퀴한 냄새 나는 싸구려 모텔의 스프링 삐걱대는 소리가 적나라한 낡아빠진 매트리스. 그 위에 앉아 양심 없이 연인 행세를 자처하는 중년 여인이 물고 있는 담배에 불을 대주며 마주하는 화려한 꽃무늬 벽지는 동근혁이라는 이름을 가진 남자에게 있어 익숙하다 못해 삶의 조각 같은 것이었다. 제비, 호스트, 남창, 걸레……. 어떤 이름으로...
이른 아침부터 거하게 차려진 상 앞에서 주변 잡귀와 살귀를 쫓기 위한 주당물림으로 진적맞이가 시작되었다. 요란스럽게 제금*을 울리는 근혁을 중심으로 그의 스승이 장군칼을 휘두르며 귀를 쫓는 시늉을 한 뒤에야 손님들이 들어와 하나둘 준비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동료 무속인, 주변 주민들, 평소 찾아오던 고객들. 그 수많은 이들을 하나하나 맞이하며 웃던 근...
"일가족을 살해한 혐의로 A 씨가 경찰에 붙잡혔습니다. A 씨는 자신이 원해서 한 짓이 아니라며 혐의를 부인하고 있으며……." 라디오에서 흐르는 뉴스에 저절로 미간이 찌푸려졌다. 나쁜 놈이 붙잡힌 게 그나마 다행이라며, 좋은 굿에 부정 타지 않게 노래나 들으며 가자는 옥수의 말에 운전하던 바라지가 조용히 채널을 돌렸다. 잔잔히 흐르는 음악이 차를 채웠을 때...
전화 알림이 뜬 화면의 이름을 보자마자 방금까지 평온했던 중년 여인의 미간이 심히 구깃구깃해졌다. 살다 보면 하나부터 열까지 맞지 않다 못해, 한 것도 없이도 미운 사람이 있는 법이다. 그리고 현걸의 신어머니 배옥수에게는 지금 전화를 걸어온 상대가 그랬다. 이름 석 자 저장하기가 싫어 정 없이 '청주 김씨'로 저장해둔 그와 얄궂게 이어진 건 순전히 아이들 ...
음주 자격증이 있는 현걸과 파스타를 물고다니는 근혁. 이외에도 많은 친구들이 함께 살며 현걸은 주로 제초 작업, 친구들은 토벌을 하며 사이좋게 지냈으나 애석하게도 현걸의 친구들은 전부 괴물이 되었다네요~^^ 근혁이는 괴물이 되었어도 현걸이 말은 잘 들어서 우호형으로 분리되고 있지만, 과연? 슬픔에 빠진 현걸이 만취해서 오밤중 숲을 돌아다니고 있으면 근혁이 ...
진인사대천명 이현걸 썸네일. 설정상 현걸은 전라도 세습무라서 화려한 무복 걸치는 일 없이 흰 한복이 기본이고 제석굿 할 때나 모자를 쓰지만, 승무복 같은 단아하면서 화려한 차림이 여간 잘 어울릴 듯 하여……. 근혁이 썸네일은 고증을 지키려면 진짜 날과 각을 제대로 잡아야 하는데 가능이나 할지(...) 여차하면 최대한 간소화된 작두복이나 철릭 입힐 생각도 하...
"알겠지? 그 부적만 있으면, 네가 어디에 있어도 나와 네 어머니가 찾아갈 거야." 그리고 지켜주겠다고 했었지, 근혁아. 주머니에 넣은 손끝에 바스락거리며 닿아오는 부적을 꽉 움켜쥔 현걸은 비로소 웃음을 머금었다. 눈에 보이는 게 다가 아닌 것을 너무 늦게 알아차렸다. 모든 불안을 떨치니 자길 지키는 신들이 느껴지고, 비로소 제대로 된 것들을 마주할 준비가...
"알겠지? 그 부적만 있으면……." 근혁이 비방에 대한 설명을 마치고서야 둘은 적막이 깔린 학교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교무실이 바로 앞에 위치한 중앙현관을 피해, 근혁과 현걸은 1층의 미술실과 음악실을 살핀 뒤 서편의 계단으로 향했다.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난 것도 아닌데 고요한 학교의 복도를 물들이던 붉은 노을은 길지 않은 낮을 따라 잽싸게 밤의 어둠 속...
"예. 입금 확인했습니다. 제가 말씀드린 것들만 잘 지키시면 탈 없이 공사 끝날 겁니다." 통화를 마친 근혁은 다시 은행 앱을 켜 늘어난 숫자를 한 자리, 한 자리 눈에 담았다. 남들보다 일찍 무업을 시작해 미친 듯이 돈을 긁어모으길 4년째. 돈을 벌 수만 있다면 비방이든 점사든 굿이든 가리지 않으며 악착같이 번 돈은 겨우 나이 스물 먹은 놈이 벌었다기엔 ...
"미욱한 제자가 성황 신령님을 뵙습니다." 보잘것없는 돌무더기 앞에 정중히 절을 올린 현걸이 고개를 들자, 백발이 새하얀 노인이 어느새 그 앞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꾹 다물린 입과 성난 눈썹은 현걸이 봐왔던 신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기에 그의 비틀린 심사를 알아차리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으레 노여움을 품은 신을 만나면 그에게 연유를 묻고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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